신아의 미
신아의 미
난 삼매(三昧)라 할 정도로 난 취미는 우아하고 고귀한 것이고 애란인들의 일년 중 가장 즐거운 일 중의 하나가 그 결실인 꽃을 피우는 것이다. 그리고 꽃을 피우는 일 못지 않게 표토를 뚫고 올라오는 신아 또한 황홀하며 새로운 변화에 대한 기대감으로 애란인의 마음을 부풀게 한다.
화예품이거나 엽예품이거나 어떠한 난이든 신아는 여러 가지의 변화를 내재하고 있는 생명의 응집체로서 애란인들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한 마력을 지니고 있다. 작년에 산채했거나 구입한 난이 선청성일까 후천성일까, 백색으로 나올까 황색으로 나올까 혹은 무지로 나올까 중투로 나올까. 호가 들어 나올까 신아의 출아와 성장 과정을 통해 이 난의 장래를 파악할 수 있고 특징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아는 한문으로 새 신(新)에 눈 아(芽)를 쓰는데 아(芽)의 사용범위가 몹시 넓다. 난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면 말라 버린 위구경 떡잎 속에 붙어 있는 잠아(潛芽)의 눈, 잠아가 통통해져서 표토를 뚫고 올라오기 직전까지의 움, 표토를 뚫고 막 올라오는 싹(出芽), 그리고 마지막 잎인 천엽(天葉)이 나오기까지의 새촉(新芽)등 신아라는 개념의 범위가 매우 넓다. 이들을 모두 포함하여 넓은 의미의 신아(新芽)가 되는 것이다.
출아한 신아는 햇빛을 받으면서 색이 들기 시작한다. 일찌감치 떡잎을 초록색으로 물들이는 것, 엷은 핑크색을 물들이는 것, 붉은 호(縞)모양의 줄이 들어있는 것, 노란색으로 변하는 것, 끝까지 흰색으로 백의종군(백의종군)하는 것 등 각양각색이며, 신아는 각 개체의 개성을 살리면서 성장을 시작한다.
신아가 핑크색으로 나올 때의 아름다움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의 감동을 준다. 핑크색으로 올라온다 하여 모두 명품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흰색으로 나오든 황색으로 나오든 혹은 파란색으로 나오든 간에 탁하지 않고 맑은 색상의 것에서 장래성을 크게 기대할 수가 있다.
신아에서 소심인지 아닌지를 알아내는 감별법은 30∼50배 짜리 소형 돋보기를 눈에 바짝 대고 떡잎을 관찰해 보면 알 수 있다. 소심인 경우 난 잎의 중심인 배골이 하얀 색이며 그 주위에 아무런 잡색을 보이지 않는다.
적화나 주금화 혹은 단엽종도 신아가 올라오는 이 시기에 감별을 해 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황화는 신아가 핑크색이나 황색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으며 화색과의 관계가 깊다. 이런 황화는 대부분 서성(曙性)의 잎을 가진 황화계통이며, 잎이 초록색인 후발성 황화는 신아가 초록색인 경우가 많다.
적화의 신아는 붉은색, 노란색, 초록색 등 다양하다. 홍화의 신아를 자세히 보면 홍색을 느낄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구별하기 힘들다. 보통 서성의 잎을 가진 난은 홍화가 필 확률이 많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잘못된 판단이다. 서성의 잎에서는 대부분 황화가 피는 확률이 많다. 한국춘란 '항아(姮娥)' 의 신아는 맑은 담녹으로 나온다. 서성의 잎에서 적화가 피는 것은 잎의 배골을 타고 약간 밝은 반(斑)이 들어가는 난으로 적화가 필 확률이 80% 이상으로 높다고 한다. 이는 일본춘란 적화인 '여추(女雛)' 의 잎이 대표적인 것이라고 일본 난계에서는 보고 있다.
주금화도 신아의 색상으로 감정하기 힘들다. 힘들다기 보다는 무슨 색이라고 잘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제멋대로 이다. 다만 봄에 주금화가 피었다면 그 난의 신아가 나올 때의 색상 등 특징을 파악해 놓는 것이 중요하다. 자화는 떡잎이 진한 자홍색으로 나왔다고 해서 모두 자화가 피는 것은 아니며 대부분 민춘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자화가 확실하다면 신아는 진한 자홍색으로 나온다. 색설화도 마찬가지이다.
엽예품의 경우 신아의 무늬가 단순히 물들어 있다는 것만으로 색화나 복색화가 피는 것은 아니다. 산반이 출아하여 자라는 광경은 참 아름답다. 신아 때는 누구나가 갖고 싶어하는 충동을 일으킨다. 산반은 아름다운 핑크색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지만 잎이 자라면 백색으로 남거나 초록색으로 소멸된다. 설백색으로 나오는 신아는 백색 무늬 혹은 복색화로 이어지는 확률이 높다.
잎에 산반이 잘 들었다 하여 꽃에도 산반이 잘 들것이라 연관지어서는 큰 오산이다. 잎에는 산반이 잘 들어도 꽃에는 들어가지 않는 경우가 있으며, 반대로 일본춘란 '광열(光悅) 과 같이 신아에는 산반이 그다지 들지 않는데도 꽃에는 화려하게 들어가는 품종이 있다.
일본춘란 '
질부금(秩父錦) 복륜이 나와 질부금의 인기가 상승하고 있다.
신아가 맑은 연두색 바탕색 짙은 초록 복륜을 두르고 나오는 감복륜 중에서 가끔 중투화나 복색화가 핀다. 감복륜은 일반 중투보다 인기가 덜하지만 신아 때의 모습은 황홀하다. 다만 성장 과정에서 바탕색의 연초록색에 녹이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색대비가 좋은 혜란의 봉(鳳)처럼 생긴 맑은 품종은 개체도 적은 만큼 소장자는 배양에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복륜의 출아 상태를 보면 처음부터 복륜을 뚜렷하게 둘러쓰고 나오는 선천성과 아무런 무늬가 들지 않은 초록색의 후천성으로 나오는 경우가 있다. 선천성 복륜은 꽃이 피었을 때 화판에도 복륜을 잘 두른다. 반대로 후천성 복륜은 꽃에 무늬가 들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신아 끝이 핑크색으로 물들어 나오는 것이 많으며 색상이 진하면 진할수록 복륜이 깊게 들어가는 경향이 있다. 홍색은 백색과 통하며 홍색으로 출아되는 복륜은 거의 백복륜이다. 물론 모든 것이 그런 것은 아니며 일본춘란 복륜소심인 '고풍(高風)' 은 후천성으로 신아가 나올 때는 아무런 잡색도 없다.
복륜의 경우 출아시 떡잎이 분홍색을 띠고 본엽이 백색으로 나오는 것에서 복색화를 피우는 경향이 많다.
중투의 신아는 대부분 백색 내지 황색 바탕에 짙은 녹복륜을 두르고 나오지만 적색이나 보라색으로 물들고 혼탁한 것도 많다. 그리고 바탕색이 연초록색으로 나와서 성장 중에 황색으로 발색하는 품종도 적지 않다. 이 경우 성촉이 되어도 기부쪽에 녹이 빠지지 않고 남는 경우가 있다. 대체적으로 잡색이 적은 맑은 색상으로 색 대비가 좋은 품종은 성촉이 되어도 잎의 색대비가 좋으며, 꽃도 경계가 뚜렷한 중투화로 피는 확률이 높다고 하겠다.
단엽종은 신아가 빳빳하며, 채집 당시보다 잎이 짧아지는 경우가 많다. 잎이 두텁기 때문에 신아가 나올 때 반이 들어 있는 듯이 보이다가 곧 소멸되는 품종도 있으므로 잘 관찰을 해야 한다. 호(縞)나 복륜(覆輪)이 들다가 마는 품종은 꽃에 무늬가 드는 경우가 있다. 신아가 나올 때 사피는 정말 아름답다. 노란 바탕에 초록색 점이 촘촘히 박히는 모양은 가히 예술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사피도 신아가 황색으로 나와서 후에 초록색 점이 들어가는 것이 있는가 하면, 초록색 잎으로 나온 후 강한 햇빛을 받으면서 녹이 퇴색해져 생기는 사피도 있다.
사피는 대체적으로 소멸성이 대부분인 만큼 무늬가 얼마만큼 오래 남아 있느냐에 따라 우열이 가려진다. 질소 비료를 적게 하면서 햇빛을 많이 주면 무늬 바탕이 오래 유지되는 경향이 있는데 너무 강하면 초록 반점이 소멸되어 서(曙)로 돌아가는 경우가 있다. 반대로 햇빛을 적게 주면 대체적으로 녹이 많이 찬다.
호피는 대부분 거의 초록색으로 나온다. 다만 한국춘란 호피반은 선천성 품종이 많으며, 신아 때부터 무늬가 들어 나오는 것이 많다. 개각충을 구제한답시고 스프라사이드를 강하게 준 난은 사피 무늬가 생기는 경우가 많다. 사피복륜, 사피소심 등이 나오지만 일시적인 현상으로 약해(藥害)에
의해 만들어진다. 스프라사이드는 정해진 농도로 뿌려주는 것이 좋다. 시중에는 제초제를 뿌려 인위적으로 사피반이나 호피반, 서반 품종을 만들어 내는 것도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화장토 위로 눈이 보일 때까지 조마조마하게 기다렸던 신아도 기온이 상승하여 차광비율을 높일 때가 되면 성장 속도가 두드러지게 빨라진다. 신아가 자라면서 애란인들은 욕심이 생기기 마련이다. "신아가 붙은 쪽이 반대였으면 좋았을 걸", "신아가 위구경쪽으로 나왔다면 중투로 나왔을 것이데..." 그리고 "좋은 무늬를 내기 위해서는 일찍 나온 신아를 따버리고 두 번째 신아를 받아 보는 것이 좋다"느니, "꽃을 보기 위해서는 신아를 따내야 한다"느니 말도 많아진다.
신아의 출아에서 느끼는 기쁨을 오래 지속시키려면 이 신아를 병들지 않고 건강하게 키우는데 신경을 써야할 일이다. 출아 후의 신아 관리는 그 난의 성질을 파악하면서 해야 한다. 1년 농사의 성패는 이 시기에 달려있는 것이다.
그리고 신아가 왕성한 활동을 할 때는 물을 많이 주어야 한다. 흰 뿌리가 내리는 동안에는 절대로 뿌리가 썩는 법이 없다. 연부병을 겁내어 물을 적게 주면 신아가 성장을 멈출 우려가 있다. 탈수병도 연부병 못지 않게 무서운 병이다. 관수 후 화장지를 가늘게 말아서 잎에 고인 물을 제거해 주는 배려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귀찮다고 하지 말고 이러한 보살핌에서 애란의 즐거움과 보람을 찾는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성장기에는 영양분을 주는 것이 좋다. 우리들은 난에는 비료를 많이 주면 안 된다고 배웠다. 그런데 최근에는 난도 먹어야 잘 자란다는 사고방식을 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무늬가 소멸된다 하여 영양분을 적게 주면 건강한 난을 키울 수 없으며 해가 갈수록 난이 왜소해 진다. 비료를 주었기 때문에 무늬가 소멸되는 난이라면 좋은 품종이라 할 수 없다. 다만 비료를 많이 주었다해서 난이 빨리 자라는 것은 아니다. 난은 채소와는 달리 원래 성질은 비료를 많이 요구하지 않는다.
진한 비료를 주면 비료장해를 일으키기 마련이므로 영양분의 희석 비율을 5,000배 정도로 아주 엷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 대신 시비 간격을 짧게 하여 장마 전까지는 자주 주는 것이 좋다고 한다. 일본에서 개최하는 전시회에서 느끼는 것인데 우수상을 수상한 난들은 한결 같이 키가 전보다 2배나 크고 잎장 수 또한 많은 것을 볼 수가 있다. 배양방법이 옛날과 다르다는 것을 실감한다. 다만 춘란은 덩치가 큰 것보다 키가 작고 아담하게 생긴 것이 보기가 좋다고 하는 사람이 없지도 않다.
왕성하게 자라야 할 시기에 잘 자라지 못하거나 성장이 멈춰있는 신아는 어딘가 탈이 난 것이 틀림없다고 보아야 한다. 신아가 나오지 않는 난이나 나오다가 중도에서 멈춰진 난, 그리고 부실한 징조가 보이는 등 난에 이상이 보일 때는 추운 겨울이건, 한창 더운 여름이건 당장 분을 쏟아서 난을 소독하고 새 분, 새 용토에 심는 등 조치를 취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난이 병에 걸리지 않아도 오랫동안 신아가 나오지 않는 경우 분을 털어 보면 신아가 위구경 아래쪽에 붙어서 반대방향으로 뻗고 있거나, 뿌리 사이에 걸려서 새싹을 못 올리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백견병이나 곰팡이병의 균들이 알게 모르게 번식하고 있는 것도 있다.